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간의 뇌는 대상을 어떻게 지각하고 기억하는가

호아킨 M. 푸스테르의 『신경과학으로 보는 마음의 지도』를 읽고

책 제목이 무척 교과서적이거나 개론적인 분위기로 지어졌으나 (원제는 Cortex and Mind), 책의 내용은 마냥 그런 분위기만은 아니다. 책에서 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 ‘교과서적’으로 언급되는 여러 이론들을 부정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몇 가지 이론들을 채택하고 있는 경우가 있고, 이 이론들은 책의 중심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하나로 이어져 있다. 흔히 여러 상반되는 가설들을 다 다루곤 하는 교과서와는 다르게 말이다. 다만 용어들이 어렵고 (뇌 부위들 용어가 원체 그렇다) 현재 뇌과학의 당면 문제들을 사전 설명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이 분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Cortex and Mind - Joaquin M. Fuster


심리학과 뇌과학에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설인 모듈주의와 연결주의가 있는데, 저자는 연결주의 쪽이다. 모듈주의란 뇌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여러 가지 ‘모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연결주의는 그런 기능이란 건 수많은 동질적인 뉴런 네트워크들이 수행하는 전일적인 창발성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극단적인 연결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다 전향했다. 극단적인 모듈주의도 ‘골상학’이라는 이름 하에 연결주의보다도 더 전에 침몰했다. 다들 어느 정도 섞여 있긴 하고 그게 맞긴 하지만, 정도의 차이란 게 있는 법이다. 내가아는 한에서 저자보다 더 모듈주의인 사람은 스티븐 핑커와 진화심리학자(그 유명한 진화심리학 가설인 ‘오래된 연장통’)들이 있고, 저자와 비슷하거나 더 연결주의인 사람들은 Deep Learning이라고 일컫는 최근의 머신 러닝 트렌드를 이끄는 컴퓨터공학자들과, 커넥토믹스를 주창하는 세바스찬 승이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제 극단적인 ‘주의자’는 없다. 섞여서 작동한다는 설명이 현재 학계의 대세이며, 그것을 강조하는 방점이 다를 뿐이다. 모듈주의는 ‘기억’이란 기능이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라는 세부 모듈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나, 저자는 기억이란 그냥 연속적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단기기억을 위한 모듈과 장기기억을 위한 모듈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단지 어떤 것은 빨리 잊고 어떤 것은 오래도록 잊지 않았을 뿐이다.


책의 큰 주제를 입력, 처리, 출력이라는 컴퓨터 정보처리과정에 빗대 보면 명확히 그려진다. 우리는 입력부와 출력부를 가지고 있으며, (입력부는 감각, 출력부는 운동) 그 사이엔 처리 과정을 담당하는 여러 연합 영역들이 있다. 사실 이 연합 영역도 반으로 나눠지는데, 감각쪽에서는 이것을 순차적으로 일차감각피질-단일양상연합피질-다중양상연합피질이라고 부른다.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중간중간 다른 피질의 이름들이 생략되어 있다.) 다중양상연합피질의 정보는 그 유명한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로 넘어가는데, 이것은 운동 위계의 시작점이고, 그 후로 전운동피질을 거쳐 실제 근육에 명령을 전달하는 일차운동피질로 정보가 전달된다. 이 체계는 그림 4.7에 명확히 그려져 있다.


그림 4.7 인간 뇌의 그림을 둘러싸고 도식적으로 표현한 피질 지각-동작 회로의 구조.


이 감각-운동 다층 위계 시스템은 너무나 명확하고 깔끔해서 이 이론에 기대지 않거나 이 이론 안으로 통합하려 시도하지 않았던 모든 이론들은 왜 통합하려 노력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심지어 이 설명 방식으로 모든 인지적 기능을 두 가지의 상위 개념으로 쪼개 설명할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지각에는 상위로 올라가면서 오감-다중감각-일화기억-의미기억-개념 등이 이어지는데, 개념이 운동 위계로 넘어가면 또 차례대로 개념(운동쪽)-운동계획-운동프로그램-행위-동작으로 이어진다. 기억은 (단기/장기 뿐 아니라) 외현기억/내현기억으로 나뉘는데, 외현기억(사건이나 의미를 기억하기)은 지각위계의 기억이고 내현기억(자전거타기 등 몸으로 체화하기)은 운동위계의 기억이다. 우리는 주의를 어떤 감각적 현시를 집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운동프로그램이나 운동계획 자체도 주의라고 불릴 만한 비슷한 시스템이다. 심지어 이 운동주의는 지각주의와 시간이 반대이다.


깔끔한 이론 앞에서 반론의 여지가 별로 없으니 (반론하려면 실험 증거를 수집하는 게 좋겠다. 뇌라는 게 이렇게 생각만큼 깔끔히 나눠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원한다면.) 큰 틀로 기억해 놓고 다른 인지과학 책을 읽으며 틀에 잘 맞는지를 체크해 보기 유용할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모듈주의와의 논쟁이 남아 있으나, 딱히 모듈주의를 반대하는 입장도 아닌 데다가, 세부적인 디테일에 싸울 거리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직업 연구자의 몫으로 남겨 놓을 사소한 것들이다.


150405

매거진의 이전글 몰락해 버린 사이버네틱스 학(學)의 마지막 찬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